●타란티노의 영화와 펄프 픽션
B급 정서를 품위 있게 드러내는 능력, 쿠엔틴 타란티노의 대표적인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B급 소재로 그려낸 영화인데도 영화를 보는 사람을 위해 영화 속에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게 만든다. 사실 별거 아닌데 펄프 픽션이 바로 그런 영화다. 기존 영화에서 완전히 벗어난 서사구조를 갖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영화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듯하다. 그러나 영화를 본 뒤 생각해보면 타란티노식 수다, 잔혹성, 그에 따른 즐거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즐거움이 숨겨져 있다. 먼저 전작 저수지 개에 등장했던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영화 장면 곳곳에 이들을 배치해 전작을 본다면 이들에 대한 기쁨과 함께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영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사실 첫 장면은 전작 출연배우를 등장시키기 위한 하나의 매큐핀으로만 여겼다. 영화로 재등장할 때까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시켜 시공간의 왜곡된 전개방식 속에서 하나의 통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게다가 내용도 전작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은행을 습격했던 배우가 이번에는 식당에서 강도짓을 하는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 전작 미스터 핑크(스티브 부세미)도 나오는데 저수지 개들의 첫 장면에서는 미스터 핑크가 종업원에게 팁을 주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펄프 픽션에서는 식당 종업원으로 등장하게 된다. 전작 캐릭터의 보상처럼 보인다. 물론 펄프 픽션에도 쿠엔틴 타란티노 본인이 직접 등장해 다시 한번 연기를 펼친다.
펄프 픽션 개봉 당시가 아니라 이제야 느껴지는 재미가 하나 존재한다. 우마 서먼의 대사 가운데 킬빌을 연상시키는 대사가 존재한다. 즉 킬 빌에 대한 타란티노의 구상이 엿보인다 장면이다. 후속작에 대한 언급을 자신의 영화에 추가한 것이다. 이후 브루스 윌리스가 일본도를 사용하는 장면도 킬빌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킬빌이라는 존재를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이지만 킬빌이라는 영화의 존재를 알고 보는 지금, 이런 장면에서도 반가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출처-네이버 영화 펄프 픽션은 옴니버스처럼 다른 독특한 구성 방식을 택한다. 영화는 크게 줄스(새뮤얼 L 잭슨)와 빈센트(존 트래볼타), 부치(브루스 윌리스)의 줄거리로 구성된다. 이들 인물은 한두 번 만난 것을 제외하면 크게 상관이 없다. 그런데 이 두 이야기의 흐름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된 두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시간순으로 나열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타란티노의 연출 능력이 다시 한번 빛나는 부분이다.▲출처-네이버영화=이 영화의 중요한 부분 가운데 또 하나는 새뮤얼 L 잭슨이라는 배우와 타란티노가 만났다는 것이다. 타란티노의 대사 작법에 이처럼 궁합이 잘 맞는 배우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타란티노 차기작에 새뮤얼 L 잭슨이 계속 등장하는 것이다. 타란티노의 시시콜콜한 대사를 새뮤얼 잭슨은 정말 잘 살린다. 이게 대사인지 실제 대화인지 모를 정도다. 영화 전체를 놓고 보면 그의 분량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임팩트는 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브루스 윌리스, 존 트래볼타, 우마 서먼 등 훌륭한 배우들이 연기를 선보였지만 새뮤얼 L 잭슨처럼 거친 대사를 쏟아낸 배우는 없었다.이 영화를 보면서 기이했던 느낌 중 하나는 긴장감을 늦추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편하게 봐도 될 장면에서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개연성으로 볼 때 절대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없는 장면에서조차 그런 긴장감이 느껴졌다. 아마 이는 타란티노의 영화적 스타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그런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것은 타란티노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2시간 30분이 넘는 러닝타임임에도 별 지루함 없이 영화를 끝까지 즐길 수 있었다.
출처-네이버 영화 펄프 픽션은 영화 전체로 봐도 힘든 영화지만 장면 하나하나만 봐도 엄청난 장면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줄스가 레스토랑 강도와의 갈등이 나타나는 장면, 부치가 빈센트를 살해하는 순간, 줄스가 살인을 하기 전 성경을 읽는 순간 등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유명한 장면은 빈센트와 미아(마 서먼)의 트위스트 장면일 것이다. 트위스트로 번성했던 존 트래볼타 그 자체를 장면에 녹여냈다. 자세히 보니 두 배우가 춤추다가 전혀 웃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은 어떤 의도의 연출이었는지는 나 자신은 모르지만, 무엇인가 미묘한 느낌을 장면에 불어 넣은 것만은 확실하다.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럽고, 트위스트라고 하면 흔히 생각나는 동작으로 가득 차 있지만, 진지하기까지 하다. 진지함과 유머의 중간쯤, 어딘가를 타란티노만큼 잘 표현할 감독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저수지 개들이 타란티노의 스타일을 대중에게 알린 영화라면 펄프 픽션은 타란티노의 능력을 대중에게 알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스타일과 능력을 두 줄로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쿠엔틴 타란티노란 감독이 더 놀랍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가 만드는 영화 장르를 타란티노 장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펄프 픽션은 그 정도의 임팩트를 보여주는 영화다.


